#아까시나무 #아카시아
학명 : Robinia pseudoacacia L.
분류 : 콩과 아까시나무속
형태 : 낙엽 활엽 큰키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개화 : 5월 중순
결실 : 9~10월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아까시나무 하면 누구나 먼저 동요 <과수원 길>을 떠올릴 것이다. 1972년에 발표된 이 노래를 수많은 사람이 듣거나 불렀다. 원래 박화목의 동시인 노랫말을 머리로 찬찬히 좇아가면 어린 시절에 나돌아치던 마을 동산이나 야산이 나온다. 그곳에 밭이 있었고, 과수원이 있었고, 아까시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꽃이 있었다. 또 꽃향기는 얼마나 짙었는지, 노랫말처럼 멀리서 꽃이 핀 것을 바람을 타고 온 기분 좋은 냄새로 대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제로 어린 박화목은 제물포에서 과수원 농사를 하던 큰아버지 댁에서 과수원 길 “정서와 리듬”을 느꼈다고 한다.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시골에서는 나무에 가시가 많아 가시나무라고도 했다. 지금의 이름은 1943년에 정태현이 발표한 식물도감 ≪조선삼림식물도설(朝鮮森林植物圖說)≫을 따른 것이다. 그 전에 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쓰였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서 문세영이 편찬한 ≪조선어사전≫을 통해 알 수 있다. 1938년 나온 사전에 “아카시아(Acacia) [名] (植) 두과(荳科)에 붙은 낙엽교목(落葉喬木). 가지에 가시가 있고 잎은 우상복엽(羽狀複葉). 꽃은 백색, 향기가 좋으며 열매는 꼬투리로 열리는 나무. 아메리카의 원산.”이라 했다. 아까시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아카시아란 나무 이름은 당시 일본에서 부르던 것을 그대로 따랐다.
일본에는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에서 씨앗을 가져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진짜 아카시아속 나무가 들어와 있었지만, 얼마 뒤 가짜 아카시아나무인 아까시나무가 아카시야키(明石屋樹)란 이름으로 전국에 보급되었다. 1878년 <농업잡지> 56호에도 똑같이 언급되었고 시와 노래에까지 등장함으로써 아카시야란 이름은 걷잡을 수 없이 널리 퍼졌다. 1925년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가 쓴 동시 <이 길>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 길은 언젠가 왔던 길 / 아아 그래 / 아카시야꽃이 피어 있어 (…)”. 뒤늦게 식물학자들이 하리엔쥬(針槐)니 니세아카시야(贋アカシヤ)니 하는 이름을 내놓았지만 사람들이 아카시야 또는 아카시아라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아카시아라 했다. 우리가 지금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를 혼용하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가시 회화나무란 뜻으로 지은 표준명 하리엔쥬를 놓아두고 아카시아라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진짜 아카시아인 아카시아속에 드는 나무는 전 세계에 엄청나게 많다. 무려 1천 종이 넘으며, 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분포한다. 원래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가시 있는 나무를 아카시아속으로 분류했는데, 이제 그것들은 국제식물학회(International Botanical Congress)의 결정에 따라 바켈리아(Vachellia)속이 되었다. 한 예로 아프리카 초원에서 기린이 잎을 따 먹는 우산아카시아나무의 학명이 Acacia tortilis에서 Vachellia tortilis로 바뀌어버렸다. 아카시아 속명은 돌기(突起)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키스(akis)에서 유래했고, 바켈리아 속명은 19세기 초 마카오에 들어선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목사로 지내며 중국 식물을 채집하고 분류한 조지 하비 바첼(George Harvey Vachell)을 기념한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개아카시아, 개아까시나무라고도 한다. 따지고 들면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가 같은 말이기에 이런 이름을 다시 만들어낸 것 같다. 모두 부질없다. 아카시아가 도입부터 잘못된 이름일지라도 사람들은 어감이 좋아 그냥 쓴다. 아까시나무꽃이라 하기보다 아카시아꽃이라 하는 것이 훨씬 좋게 느껴진다. 하물며 여기에 기준이 되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의 ‘개’를 붙이면 어떻겠는가. 그 향기로운 꽃 앞에서 흥이 다 깨질 것 같다.
아까시나무 학명은 로비니아 프세우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다. 로비니아는 아까시나무를 북아메리카로부터 프랑스에 들여와 유럽에 전파한 로뱅(Robin) 부자, 즉 장 로뱅과 그의 아들 베스파시엥 로뱅을 기념한 것이다. 장 로뱅은 16~17세기 프랑스 궁정의 정원사였다. 프세우도아카시아는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이다. 일본의 니세아카시아는 바로 이 종소명을 번역해 만들어졌다. 일본 사람들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나 노래에 가짜 아카시아란 말은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1910년대에 독일의 조차지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건너온 이래 아까시나무는 아무 곳에서 잘 자라 땔나무하느라 벌거숭이가 된 야산에 주로 심어졌다. 특히 속성수로서 1950~1960년대에 대거 조림되어 산림녹화에 일등공신이었다. 아까시나무는 자신의 뿌리에서 살아가는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제공하고,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 분자를 암모니아로 바꾸어 아까시나무가 사는 데 필요한 단백질 생성을 돕는다. 그래서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다른 나무보다 잘 견딘다.
아까시나무는 헐벗은 산에 심어져 다시 땔나무로 쓰인 고마운 나무다. 겨울이 되면 시골 사람들은 가시가 뚫을 수 없는 두꺼운 가죽장갑을 한 손에 끼고 듬직한 조선낫을 놀려 나무해 날랐다. 뿌리움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밑동을 잘라도 새로운 싹이 봄에 나온다. 아까시나무가 없었다면 다른 나무들이 땔감으로 도벌되어 산림녹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벌꿀을 모으는 양봉업자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나무다. 아카시아꿀은 국내 천연 벌꿀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찰피나무, 헛개나무, 때죽나무, 오갈피나무, 쉬나무, 쪽동백나무 등의 꽃이 아까시나무꽃보다 더 많은 꽃꿀을 분비한다고 하지만 이 나무들을 많이 심고 가꾸기 전까지는 아까시나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요즘에야 맛나는 군입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장난감이 널렸다. 옛날 아이들은 입이 심심할 때 아까시나무꽃을 따 먹었다. 꽃꿀은 꽃술 밑에 분포하는 꿀샘에서 나온다. 꽃잎만 먹는 게 아니라 꽃받침까지 통째로 먹어야 단맛이 나고 그와 더불어 특유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까시나무꽃은 튀김옷을 입혀 튀김을 해 먹거나 술을 담그기도 한다.
아까시나무의 깃꼴겹잎은 하나의 놀이 도구였다. 두 사람이 아까시나무 잎을 나무에서 따 잔잎의 개수를 서로 맞춘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손가락을 튕겨 잔잎을 떼어낸다. 이때 잎을 잘 골라야 한다. 아직 어려 부드러운 잎은 떨구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시합을 벌이면 재미가 없다. 진 사람이 이마에 손가락 꿀밤을 맞는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아까시나무를 싫어하게 되었다. 가장 큰 원인은 더 이상 땔나무로 쓰이지 않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쓸모가 없어 보인다. 아까시나무는 목질이 치밀해 화력이 좋고 숯으로 구워도 그만이지만 그렇게 활용하지 않는다. 땔나무로 쓰면 지나치게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막고 잔가지나 자잘한 나무로 너저분한 숲이 정돈되는 효과를 본다. 아까시나무를 방치했더니 이제는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해 산을 망치는 ‘악당’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아까시나무 숲에 들어가면 가지의 가시가 몸 여기저기를 할퀴고 찔러대는 통에 여간 성가시지 않다.
아까시나무 숲에는 다른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일본 농업환경기술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아까시나무는 잎에서 카테킨(catechin), 로비네틴(robinetin), 미리세틴(myricetin), 퀘르세틴(quercetin)을 방출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한다. 그중에서도 카테킨이 가장 높은 억제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을 꼭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다. 어떤 식물이든 경쟁자가 잘 자라지 못하게 타감물질(他感物質)을 내놓는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물질들은 항암이나 항산화에 효과가 있다. 나무껍질에 함유된 아피제닌(apigenin)과 아카세틴(acacetin)도 입술에 염증을 유발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억제한다.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만은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결점이 있다. 아까시나무는 얕게 수평으로 뻗는 뿌리에서 움이 나오기 때문에 번식력이 너무 강하다. 수령 20~30년에 이르면 구새 먹는 경우가 많다. 아까시흰구멍버섯 등에 의해 나무 속이 썩어 목재로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왜놈들이 우리나라 산을 망치려고 일부러 아까시나무를 심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온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일본 전역에도 산림녹화, 사방림, 방풍림, 가로수 등의 용도로 아까시나무를 심었다.
아까시나무를 나쁘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쓰느냐는 사람 손에 달렸다. 아까시나무는 자동차 배기가스 중의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상수리나무와 맞먹는다고 하니 도시공원에 많이 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헝가리의 경우 아까시나무가 전체 삼림 면적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연간 목재 수확량의 20퍼센트 가까이 된다고 한다. 나무를 토목재, 건축 내·외장재, 마루재, 목공재, 우드칩 등으로 자국에서 소비하고 해외에 수출까지 한다. 우리나라 산림과학원에서도 양봉과 목재를 함께 충족하는 아까시나무를 헝가리에서 도입해 육묘와 종자 생산에 힘쓰고 있다.
아까시나무꽃은 5월 중순에 새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총상꽃차례로 피어 아래로 늘어진다. 꽃잎은 흰색으로 기꽃잎 1개, 날개꽃잎 2개, 용골꽃잎 2개다. 가장 큰 기꽃잎은 원형에 가깝고, 끄트머리 가운데가 좁고 얕게 파였으며, 좌우 양쪽이 뒤로 젖혀진다. 하반부에 난 황록색 무늬는 밀표(蜜標)로서 꿀벌을 꽃꿀이 있는 곳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꽃꿀을 분비하는 꿀샘은 꽃술 기부(基部)에 있다. 꿀벌은 날개꽃잎과 용골꽃잎에 앉아 밀표가 있는 기꽃잎 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빨대 같은 주둥이로 꽃꿀을 빨아들여 배 속 꿀주머니에 저장한다. 이때 꿀벌의 무게 때문에 꽃술을 감싸고 있던 용골꽃잎이 벌어지고, 꽃술이 꿀벌의 몸에 닿게 된다. 꿀벌이 꽃을 떠나면 용골꽃잎은 원래대로 닫힌다. 꽃술은 1개의 암술과 10개의 수술로 이루어졌다. 수술대는 9개가 아래에서 하나로 붙었고 나머지 1개는 따로 떨어져 있다. 꽃은 약 9일 동안 피었다가 일부는 꽃잎이 시든 채 열매로 나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은 꽃대와 이어진 꽃자루가 끊어지며 통째로 땅에 떨어진다.
열매는 길고 납작한 꼬투리열매(협과)로서 9~10월에 성숙한다. 꼬투리 끝에 가시처럼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은 떨어지지 않고 남은 암술대다. 꽃받침도 열매에 남는다. 꼬투리 안에는 콩팥처럼 생긴 납작한 씨앗이 4~10개쯤 들었다.
잎은 새 가지에서 홀수깃꼴겹잎으로 어긋나기를 한다. 잎자루 밑에는 가시 모양의 턱잎이 한 쌍 나는데, 이것은 차츰 진짜 가시로 성장해 가지에 단단히 붙어 있다. 잔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꼴로, 윗면에 골이 진 잎줄기에 서로 마주 보고 달린다. 이 잔잎의 잎자루 밑에도 바늘꼴의 작은턱잎이 하나 돋는다. 잔잎의 가장자리는 톱니 없이 밋밋하다.
나무줄기 껍질은 갈색, 갈회색, 회색이고, 어린 나무일 때 매끈한 표면에 껍질눈과 가시가 있다. 수령이 많아짐에 따라 표면이 거칠어지며 세로로 골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