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8

객창한등 客窓寒燈

객창한등 집집마다 등불 환한 섣달그믐 밤 객창에도 심지 돋우네. 찾아올 이 없고 찾아갈 곳 멀어 외려 마음 홀가분하네. 해마다 맞는 정초 또 가는 세월이지만 흰 수염 나도록 빈 수레로 온 회한은 끝내 떨칠 수 없구나. 바윗덩이 태웠으면 든든했으리. 짚동가리 얹었으면 넉넉했으리. 왜 그리 쇠똥밭에 뒹굴기 어렵던가. 창을 열어 고향 하늘 바라보니 찬바람에 별들이 눈물 글썽이네. ― 민인대(閔忍待)

창작/시 2021.03.23

혀 (1)

(1) 아버지는 혀가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입 밑과 이어진 혀밑띠 앞쪽이 없다. 그처럼 몽땅한 혀로는 말하지 못한다. 음식의 맛도 남들보다 훨씬 적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아버지가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담요에 덮여 침대에 누웠다가 턱을 끌어당겼다. 모두 가까이 오라는 신호였다. 어머니와 누나, 나는 이미 침대 모서리와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아버지 곁에 있었다. 우리는 볼이 홀쭉한 아버지 얼굴 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버지에게 올 것이 왔다. 헐떡거리던 숨소리마저 가늘어지고 눈빛이 흐려졌다. 아버지는 금붕어처럼 몇 번 입을 움지럭거리더니 놀랍게도 말을 했다. “이, 아, 하, 야.” “아, 야, 하, 야.” 그렇다. 그것은 내가 난생처음 듣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평..

창작/소설 2021.03.20

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알알 깨어나는 지난날의 추억 부엌 자욱한 청솔 연기 몰래 눈물 훔치던 어머니도 보리 까끄라기 멱살 잡힌 아버지도 붉은 맨발 흰 고무신에 청춘을 싣고 한겨울 도회지 공장을 도망쳐 고향 칼바람 앞에 피식 웃던 형도 고운 단풍에 파묻힌 저녁 그래 잘살아 소리쳐 울며 골목길을 뛰어간 그 어린 여인도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아내도 꾸중 듣던 아이들도 뼛속에 얼얼 자리를 잡는다 안개와 어둠 속의 길을 돌부리와 가시를 괴로워하고 끝내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온 들짐승 사람이어서 미안합니다 나만 아파하던 날들을 세죄합니다 찬물에 두 손을 담그고 빌어 비로소 나 여기 있다

창작/시 2019.10.17

필봉산 추억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초가을에 서너 명의 친구와 함께 해발 848미터의 필봉산(筆峰山)을 처음 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보이는 산, 소 먹이러 가서 아득히 올려다보는 산, 초등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산이었다. 이름처럼 산의 생김새가 붓끝을 닮았다. 우리는 라면과 냄비도 챙겼다. 우리 동네에서 필봉산을 가려면 먼저 그 옆에 있는 강구산을 타야 한다. 도치바우(도끼바위)에 이르기 전 비탈진 산에 거대한 몸을 박은 바위가 나타났고, 그 바위 한쪽에 파인 고랑으로 맑은 물이 찰찰 흘러내리는데, 가재가 마른 바위 위에 나와 가을 햇볕을 쬐며 얼쩡거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강구산 중턱에 이르자 샘이 나왔다. 그토록 경사가 급한 곳에도 무릎을 꿇고 소처럼 입을 대어 물을 마실 수 있는 샘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거..

창작/잡글 2019.09.25

나도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농사일 혀 빠지게 일해도 돈에 쪼들려 앞이 캄캄하고 아버지가 속을 썩일 때 어머니는 "콱 죽었으면 좋겠다!" 장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아버지는 오십에 죽었는데 나도 곧 죽어야 할 기야." 나는 "할아버지가 오십, 아버지가 육십이었으니 다음 차례는 칠십이군." 추운 겨울 강 썰매를 타다 얼음 깨진 물에 옷이 다 젖어 제 어머니에게 혼난 뒤 제 아버지 혁대를 기둥 대못에 걸어 목을 맨 아이를 생각하노니, 아이들도 삶이 고단하다.

창작/잡글 201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