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5

객창한등 客窓寒燈

객창한등 집집마다 등불 환한 섣달그믐 밤 객창에도 심지 돋우네. 찾아올 이 없고 찾아갈 곳 멀어 외려 마음 홀가분하네. 해마다 맞는 정초 또 가는 세월이지만 흰 수염 나도록 빈 수레로 온 회한은 끝내 떨칠 수 없구나. 바윗덩이 태웠으면 든든했으리. 짚동가리 얹었으면 넉넉했으리. 왜 그리 쇠똥밭에 뒹굴기 어렵던가. 창을 열어 고향 하늘 바라보니 찬바람에 별들이 눈물 글썽이네. ― 민인대(閔忍待)

창작/시 2021.03.23

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알알 깨어나는 지난날의 추억 부엌 자욱한 청솔 연기 몰래 눈물 훔치던 어머니도 보리 까끄라기 멱살 잡힌 아버지도 붉은 맨발 흰 고무신에 청춘을 싣고 한겨울 도회지 공장을 도망쳐 고향 칼바람 앞에 피식 웃던 형도 고운 단풍에 파묻힌 저녁 그래 잘살아 소리쳐 울며 골목길을 뛰어간 그 어린 여인도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아내도 꾸중 듣던 아이들도 뼛속에 얼얼 자리를 잡는다 안개와 어둠 속의 길을 돌부리와 가시를 괴로워하고 끝내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온 들짐승 사람이어서 미안합니다 나만 아파하던 날들을 세죄합니다 찬물에 두 손을 담그고 빌어 비로소 나 여기 있다

창작/시 201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