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창한등 客窓寒燈 객창한등 집집마다 등불 환한 섣달그믐 밤 객창에도 심지 돋우네. 찾아올 이 없고 찾아갈 곳 멀어 외려 마음 홀가분하네. 해마다 맞는 정초 또 가는 세월이지만 흰 수염 나도록 빈 수레로 온 회한은 끝내 떨칠 수 없구나. 바윗덩이 태웠으면 든든했으리. 짚동가리 얹었으면 넉넉했으리. 왜 그리 쇠똥밭에 뒹굴기 어렵던가. 창을 열어 고향 하늘 바라보니 찬바람에 별들이 눈물 글썽이네. ― 민인대(閔忍待) 창작/시 2021.03.23
첫봄 첫봄 남향 축담에 쨍쨍한 햇살 널리고 빨래는 늘어져 눅눅한 시름 더네. 북편 바람 허공에 낙엽 태우더니 첫봄을 유람하는 네발나비였구나. 초목은 붉고 푸른 눈 다시 뜨는데 오래 묵은 이 오욕 언제 떨칠까. ― 민인대(閔忍待) 창작/시 2021.03.23
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알알 깨어나는 지난날의 추억 부엌 자욱한 청솔 연기 몰래 눈물 훔치던 어머니도 보리 까끄라기 멱살 잡힌 아버지도 붉은 맨발 흰 고무신에 청춘을 싣고 한겨울 도회지 공장을 도망쳐 고향 칼바람 앞에 피식 웃던 형도 고운 단풍에 파묻힌 저녁 그래 잘살아 소리쳐 울며 골목길을 뛰어간 그 어린 여인도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아내도 꾸중 듣던 아이들도 뼛속에 얼얼 자리를 잡는다 안개와 어둠 속의 길을 돌부리와 가시를 괴로워하고 끝내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온 들짐승 사람이어서 미안합니다 나만 아파하던 날들을 세죄합니다 찬물에 두 손을 담그고 빌어 비로소 나 여기 있다 창작/시 2019.10.17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나는 이름 없는 풀이었고 풀에 맺힌 이슬이었고 당신은 나를 떨치고 가는, 늘 바람이었다. 땅 밑 단단한 어둠을 기어 어느 날 문득, 당신 앞에 파랗게 서고 싶었던 대 뿌리 같은 내 오랜 마음도 오늘은 바람에 몸서리치는, 오늘은 펄럭이는, 오늘은 찢어지고 흩어지는, 오늘은 바람 부는 날이다. 창작/시 2019.09.16
새해 소원 새해,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흰 눈에 깡총깡총 강아지가 되고 싶다. 새해,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햇살에 꾸벅꾸벅 고양이가 되고 싶다. 새해,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알에서 삐악비악 병아리가 되고 싶다. 그럼 너는? 언 손을 호호 호호 엄마 입김 되고 싶다. 창작/시 201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