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류록 3

신역 유두류록

#김종직 #유두류록 #지리산유람기 "푸른 다슬기가 점점이 이어지고 가로지르며 우뚝 선 것들은 남해 거제의 군도일 터...". 참 멋진 문장이다. 멀리 보이는 남해 바다의 섬들을 푸른 다슬기라 했다. 이런 멋진 표현은 "마름으로 덮인 내[川]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가 하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큰 봉우리들 사이의 운무를 내(시내)라 했고, 운무에 머리를 드러낸 작은 봉우들을 시내, 연못 등에서 볼 수 있는 수생 식물 마름이라 했다. ~・~・~・~・~・~・~・~・~・~・~ 유두류록(遊頭流錄) _ 점필재 김종직 [일러두기] 옛 한문은 ‘…한데’, ‘…하니’라고 옮길 수밖에 없는 게 많이 나옵니다. 그런 글이 잇따를 때는 하나의 문장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또 글이 잘 읽히도록 약간 다듬었음을 밝혀 둡니..

등산 2020.06.15

유두류록

유두류록(遊頭流錄) _ 점필재 김종직 [일러두기] 옛 한문은 ‘…한데’, ‘…하니’라고 옮길 수밖에 없는 게 많이 나옵니다. 그런 글이 잇따를 때는 하나의 문장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또 글이 잘 읽히도록 약간 다듬었음을 밝혀 둡니다. 원문의 뜻과 정신은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모(某, 자기의 겸칭)는 영남에서 나고 자랐으니 두류산(頭流山)은 바로 내 고향 산인데, 남북으로 나아가 벼슬하며 세속에 골몰해 나이 사십이 넘도록 아직 한 번도 유람하지 못했노라. 신묘년(辛卯年, 1471) 봄에 관직을 받아 함양에 내려갔더니 두류산이 그 경계 안에 매우 높고 우뚝하면서 싱싱하게 푸른 모습으로 있어 눈만 들면 다 보였지만, 흉년에 백성의 일과 서류 처리에 바빠 거의 이 년 동안 또 감히 유람 한 번 할 수 없었으니!..

번역 2019.12.09

요곽소삼 불사구일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시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경남 밀양 출신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리산을 고향의 산으로 여겼다.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지내던 성종 2년(1471) 추석에 조태허, 유극기, 한태원, 해공, 법종, 옥곤, 용산 등 친구, 승려, 구실아치(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와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천왕봉까지 다녀온 뒤 기행문 을 남겼다. 다음은 그 글의 한 토막이다. (지리산) 유람에 나선 지 겨우 닷새 만에 생각 정신 외모가 매우 넓어지고 쓸쓸해진 것을 갑자기 깨달았으니, 처자와 구실아치들이 나를 볼 때도 지난날과 같지 않으리라. 出遊纔五日 而頓覺胷次神觀 寥廓蕭森, 雖妻孥吏胥視我 亦不似舊日矣。( 출유재오일 이돈각흉차신관 요곽소삼, 수처노이서시아 역불사구일의。) 흉..

등산 201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