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잡글 2

필봉산 추억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초가을에 서너 명의 친구와 함께 해발 848미터의 필봉산(筆峰山)을 처음 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보이는 산, 소 먹이러 가서 아득히 올려다보는 산, 초등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산이었다. 이름처럼 산의 생김새가 붓끝을 닮았다. 우리는 라면과 냄비도 챙겼다. 우리 동네에서 필봉산을 가려면 먼저 그 옆에 있는 강구산을 타야 한다. 도치바우(도끼바위)에 이르기 전 비탈진 산에 거대한 몸을 박은 바위가 나타났고, 그 바위 한쪽에 파인 고랑으로 맑은 물이 찰찰 흘러내리는데, 가재가 마른 바위 위에 나와 가을 햇볕을 쬐며 얼쩡거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강구산 중턱에 이르자 샘이 나왔다. 그토록 경사가 급한 곳에도 무릎을 꿇고 소처럼 입을 대어 물을 마실 수 있는 샘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거..

창작/잡글 2019.09.25

나도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농사일 혀 빠지게 일해도 돈에 쪼들려 앞이 캄캄하고 아버지가 속을 썩일 때 어머니는 "콱 죽었으면 좋겠다!" 장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아버지는 오십에 죽었는데 나도 곧 죽어야 할 기야." 나는 "할아버지가 오십, 아버지가 육십이었으니 다음 차례는 칠십이군." 추운 겨울 강 썰매를 타다 얼음 깨진 물에 옷이 다 젖어 제 어머니에게 혼난 뒤 제 아버지 혁대를 기둥 대못에 걸어 목을 맨 아이를 생각하노니, 아이들도 삶이 고단하다.

창작/잡글 201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