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초가을에 서너 명의 친구와 함께 해발 848미터의 필봉산(筆峰山)을 처음 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보이는 산, 소 먹이러 가서 아득히 올려다보는 산, 초등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산이었다. 이름처럼 산의 생김새가 붓끝을 닮았다. 우리는 라면과 냄비도 챙겼다. 우리 동네에서 필봉산을 가려면 먼저 그 옆에 있는 강구산을 타야 한다. 도치바우(도끼바위)에 이르기 전 비탈진 산에 거대한 몸을 박은 바위가 나타났고, 그 바위 한쪽에 파인 고랑으로 맑은 물이 찰찰 흘러내리는데, 가재가 마른 바위 위에 나와 가을 햇볕을 쬐며 얼쩡거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강구산 중턱에 이르자 샘이 나왔다. 그토록 경사가 급한 곳에도 무릎을 꿇고 소처럼 입을 대어 물을 마실 수 있는 샘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