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나무
학명 : Philadelphus schrenkii Rupr.
분류 : 범의귓과 고광나무속
형태 : 낙엽 활엽 떨기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암수한꽃
개화 : 5월 하순
결실 : 9월
고광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동북부가 원산지인 낙엽 활엽 떨기나무다. 눈길을 끄는 화려한 꽃들이 물러가고 짙은 녹음이 바야흐로 우거지는 5월 하순부터 거의 한 달 동안 맑고 단정한 꽃을 총상꽃차례로 피운다. 사방에 나뭇잎, 풀잎이 무성하고 새들의 지저귐만 뜸하게 들려오는 호젓한 산속에서 저 혼자 꽃을 하얗게 피운 고광나무를 보노라면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떠오른다.
“산에는 꽃 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고광나무 이름은 한자어 孤光(고광)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하나의 불빛이 고광인데, 옛사람들이 읊은 한시에 더러 나온다. 고광나무는 충분히 그렇게 불릴 만하다. 계곡물에 세수라도 한 듯 환하고 말끔한 꽃을 ‘저만치 혼자서’ 피운 것을 보면 고광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의문이다. 이름의 유래가 과연 그럴까. 누가 그럴싸하게 창작한 것 같다. 한자어 孤光에서 유래했다면 실제로 옛 문헌에 孤光木(고광목)이라든가 孤光樹(고광수)라고 하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는 고광나무속 나무를 통틀어 산매화라고 한다. 이 명칭은 1955년 ≪경제식물 핸드북(经济植物手册)≫에 처음 등장한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 같은 우리 옛 의약서에는 산매화가 아닌 산매가 나오는데, 이것은 욱리(郁李, 이스라지)의 향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설은 고갱나무에서 고광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고갱은 고갱이, 즉 풀이나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 있는 연한 심(心)을 말한다. 고갱이는 고ᄀᆞㅣ양(고개양)과 고갱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배추 고갱이(배춧속)같이 나무나 풀의 연한 순도 고갱이라 했는데, 봄에 새순을 뜯어 나물로 먹는 나무라는 뜻에서 고갱나무라 하다가 고광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1922년 ≪조선식물명휘≫에서 조선 향명을 오이순이라 한 것으로 보아 이 설은 매우 설득력 있다. 나물로 먹는 새순에서 오이 냄새가 났기 때문에 오이순이라는 다른 이름이 나왔다. 고광나무가 이름의 표준이 된 것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그렇게 수록된 뒤부터다.
고광나무꽃은 매화를 닮았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그윽한 향기까지 닮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고광나무를 동북산매화(东北山梅花, 東北山梅花)라 하고, 일본에서는 죠센바이카우쓰기(朝鮮梅花空木, 조선매화공목)라고 한다. 다만 꽃잎이 5개인 매화와 달리 고광나무꽃은 꽃잎이 4개이고, 향기도 매향(梅香)은 아니다. 고광나무꽃에서는 재스민 비슷한 향기가 난다. 고광나무속 나무를 통틀어 가리키는 영어명 모크 오렌지(Mock Orange)는 ‘가짜 오렌지’를 뜻하는데, 이는 고광나무꽃의 생김새와 향기가 오렌지꽃과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꽃술은 암술 1개와 수술 25~30개다. 암술대 끝은 보통 4개로 깊게 갈라진 것을 볼 수 있다.
꽃받침조각은 다른 나무와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꽃이 피었을 때 연초록색이나 황록색이던 4개의 꽃받침조각은 꽃이 지고 난 뒤부터 점차 녹색으로 변하며 열매의 성장에 맞춰 조금 더 크게 자란다. 완두콩만 한 타원형 튀는열매(삭과)를 둘러싼 이것은 마치 갑옷의 경갑(頸甲, 목가리개)처럼 보인다. 커가는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빳빳한 가리개를 일부러 둘러친 것 같다.
열매는 9월에 갈색으로 익는다. 열매껍질이 말라 4조각으로 갈라지면 4개의 씨방에 든 가늘고 긴 씨들이 밖으로 드러난다. 수피는 회색 또는 회갈색이며 세로로 잘게 갈라진다.
잎은 달걀꼴로, 끝이 점차긴뾰족끝(점첨두)이고 밑이 넓은뾰족밑(광예저)이며, 가장자리에 짧은 톱니가 있다. 톱니의 요부(凹部)는 곡선으로 휘어져 들어간 경우가 많다. 어린잎일 때 잎 앞면에 잔털이 있으나 자라면서 거의 다 없어진다. 잎 뒷면 연녹색 잎맥 위에 잔털이 뚜렷하다. 잎차례는 마주나기다. 일년생 가지와 새 가지에도 잔털이 있다.
이 털로 인해 고광나무는 쇠영꽃나무라 불리기도 했다. 원래 쇠영은 수염(鬚髥)을 말한다. 조선 후기의 ≪물보(物譜)≫, ≪물명고(物名考)≫ 등에는 초장초(酢漿草, 괭이밥)를 괴싀영 또는 고싀영이라 하고, 산모(酸模, 수영)를 싀영이라 했다. 괴싀영이나 고싀영은 고양이수염이라는 뜻이다. 지금 수영으로 불리는 초본식물 이름도 잔뿌리가 수염(싀영)처럼 많은 데서 유래했다.
고광나무는 원래 햇빛을 좋아하는 양지나무이지만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그늘진 숲에서 하얗게 꽃을 피운 나무를 보고, 많은 사람이 어둠을 밝히는 한 점 외로운 등불이나 빛을 떠올려 그 이름을 한자어 孤光과 연결을 짓지 않았을까. 꽃이 맑고 고운 데다 구황 식물로 사람들에게 잎을 내주었던 참 고마운 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