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혀 (1)

나무입문 2021. 3. 20. 11:09

(1)

아버지는 혀가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입 밑과 이어진 혀밑띠 앞쪽이 없다. 그처럼 몽땅한 혀로는 말하지 못한다. 음식의 맛도 남들보다 훨씬 적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아버지가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담요에 덮여 침대에 누웠다가 턱을 끌어당겼다. 모두 가까이 오라는 신호였다. 어머니와 누나, 나는 이미 침대 모서리와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아버지 곁에 있었다. 우리는 볼이 홀쭉한 아버지 얼굴 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버지에게 올 것이 왔다. 헐떡거리던 숨소리마저 가늘어지고 눈빛이 흐려졌다. 아버지는 금붕어처럼 몇 번 입을 움지럭거리더니 놀랍게도 말을 했다.

, , , .”

, , , .”

그렇다. 그것은 내가 난생처음 듣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평생 앓는 소리도 내지 않던 아버지는 그 두 마디를 우리에게 남겼다. 곧이어 꼬르륵하고 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영감!”

아빠!”

어머니가 먼저 아버지 손을 잡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곡했고, 누나는 아버지 무릎에 쓰러져 큰 소리로 울었다. 나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안방 문께에 대기하던 가족이 우르르 침대에 몰려들었다. 아버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하며 저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고인을 불렀다. 그때 매형이 나섰다.

, . 이럴 게 아니라 아버님이 편히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해드립시다.”

그러자 들끓던 곡소리가 찬물을 끼얹은 듯 잦아들었다.

생사를 주관하는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지금 여기 어린 양이 하나님 아버지 품에 들려 합니다.”

이승에 남은 가족 모두 기도의 예를 갖출 때 나는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아파트 필로티에 내려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고층 건물들 사이로 하늘이 푸르렀다. 작고 흰 구름 하나가 하늘에 떠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나는 자식이지만 아버지를 잘 모른다. 아버지는 그저 술꾼이고 벙어리였다. 술을 날마다 마시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황달이 온 것이다. 몇 년 전 새벽같이 신문사에 출근해 커피와 담배로 하루를 시작할 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그(너희) 아버지 눈이 왜 노랗니? 네가 어서 모시고 병원에 가봐라.”

신문사 기자 일이란 대개 전날에 내보낸 기사를 점검하고 부서 회의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부장인 나는 바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먼저 편집국장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오로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일이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예정된 문화면 기삿거리를 챙겨 부하 기자가 오전 편집회의에 대신 들어가게 한 뒤 아버지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그때는 아버지의 병명이 알코올성 지방간이었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이 약주를 많이 하시네요. 건강하게 살려면 금주해야 합니다. 일주일 입원하고,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금주하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황달이 사라지고 몸이 좀 나아지자 평소처럼 술을 마신 모양이다. 황달이 도졌을 때는 눈 흰자위뿐만 아니라 온몸이 노랬다. 마치 치자로 물들인 것 같았다. CTMRI니 하는 의료 장비로 검사받았더니 췌장암이었다. 그것도 말기. 알코올성 지방간이었을 때 이미 췌장암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수술을 받아도 네다섯 달밖에 못 산다고 의사가 말했는데,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서둘러 장례식장에 전화했다. 아버지가 췌장암 수술을 받은 그 병원에 딸린 시설이었다. 임종에 가까워 진작에 연락받고 대기 중이던 구급차가 달려왔다. 장례지도사와 운전사가 아버지를 들것에 누이고 흰 천으로 뭉뚱거린 뒤 몇 개의 벨트로 묶었다.

먼저 응급실에 들러 사망 진단을 받은 뒤, 안치실로 모셔 깨끗하게 닦고 수의를 입혀드릴 겁니다. 그동안 고인이 불편해 보이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유족을 안심시키려는 듯 장례지도사가 말했다.

아버지는 바퀴가 달린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태워졌다. 누나와 매형, 아내는 짐을 챙겨 아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오기로 하고,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가 누운 구급차 뒤칸에 탔다.

아이고, 말도 못 하고 그렇게 고생하더니저승에서는 맘 편히 사시오.”

차 안에서도 어머니의 통곡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비통하기는 해도 여전히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는데 억지로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췌장암 수술을 받고 한 달 남짓 입원했다가 집에 돌아온 뒤로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이 그랬다. 대신 고통을 덜으려고 의사를 불러 모르핀 주사를 맞았으나, 나중에는 그마저도 거부했다.

어차피 낫지 않을 병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가겠다. 괜히 더 치료받아 헛돈 쓸 생각 없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다가 때가 되면 죽으련다.’

퇴원해 집에 돌아온 날, 아버지는 수첩에 글을 써 거실에 모인 가족들에게 보였다.

아니, 이 양반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무슨 소리야? 영감이 죽긴 왜 죽어요?”

어머니가 정색하고 펄쩍 뛰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내 눈시울이 붉어져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들킨 듯했다.

그래도 아프면 병원에서 지내는 게 좋지 않아요, 아빠?”

아니다. 난 집이 좋아. 그편이 병 수발하는 네 엄마한테도 좋을 거다. 집에서 다른 일을 볼 수 있고 말이야.’

누나의 말에 아버지가 글로 대꾸했다. 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몸 상태를 아는 것 같았다.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릴까 말까 망설이던 나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버지, 알고 계셨어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그럼, 알지.” 하는 입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자조하듯 웃으며 가족들 표정을 슬쩍 훑는 아버지의 눈이 어둡고 깊어 보였다.

불쌍한 양반.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그 말을 남기고 허둥지둥 안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안방 문이 열렸을 때 침통하게 자리를 지키던 우리 모두가 놀랐다. 어머니는 그새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지만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선언하듯 말했던 것이다.

그까짓 암이 무어라고. 영감. 살아 있는 동안 나하고 좋은 데 구경 다니고, 맛난 거 먹고, 좋아하는 술도 마시고 그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