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나무

찔레꽃보다 찔레나무

나무입문 2020. 2. 18. 13:26

찔레나무

학명 : Rosa multiflora Thunb.
분류 : 장미과 장미속
형태 : 낙엽 활엽 떨기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암수한꽃
개화 : 5월 중순
결실 : 9~10

 

 

찔레나무는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엽 활엽 떨기나무로 찔레, 찔레꽃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는 야장미(野薔薇), 산장미(山薔薇), 도미(荼蘼, 酴醾)다. 찔레나무라는 이름은 줄기와 가지에 가시가 있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찔리기 때문에 붙여졌다. 찌르다의 옛말이 디ᄅᆞ다인데,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딜위, 영조 때 간행된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에는 ㅅ딜ᄂᆞㅣ(띨내), 유희의 ≪물명고≫에는 ㅅ질늬(찔늬)라고 적혀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찔레꽃이 추천명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 따르면 찔레나무와 찔레가 표준어다.

워낙 우리 주변에 흔한 데다 문학 작품과 노래에서 찔레꽃을 많이 다루어 그 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찔레나무 하면 찔레꽃이 곡명인 몇몇 대중가요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에 꺾어 먹던 찔레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은 산과 들로 쏘다니며 놀다가 주전부리로 찔레를 꺾어 먹곤 했다.

찔레는 찔레나무의 어린 가지나 줄기다. 살이 통통한 찔레는 나무 밑동에서 돋는다. 찔레나무가 떨기나무이다 보니 거기에서 오달진 것이 나온다. 찔레가 눈에 띈다고 성급하게 손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 잎가지로 다보록한 찔레나무 밑은 내리쬐는 땡볕을 피해 뱀이 똬리를 틀고 쉬기 좋은 곳이다. 먼저 작대기로 요란하게 그곳을 들쑤셔 뱀을 쫓는 의식을 한바탕 치른 뒤 찔레를 꺾어야 한다.

아이들은 껍질을 벗겨 찔레를 먹기 전에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찔레를 부러뜨리면 절단면에서 점액이 나와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진다. 이 실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견주어 긴 쪽이 이긴다. 그저 재미로 하는 놀이다. 아이들은 이겨도 져도 아삭아삭 토끼처럼 찔레를 먹는다. 그 맛은 떨떠름하면서 달짝지근하다. 꽃잎을 따 먹기도 하는 모양이다.

“찔레꽃이 하얗게 / 피었다오 /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 피었다오 / 찔레꽃 이파리는 / 맛도 있지 / 배고픈 날 따 먹는 / 꽃이라오 // 광산에서 돌 깨는 / 언니 보려고 / 해가 저문 산길에 / 나왔다가 / 찔레꽃 한 잎 두 잎 / 따 먹었다오 / 저녁 굶고 찔레꽃을 / 따 먹었다오”

가수 이연실이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하고 부른 노래 <찔레꽃> 가사의 모태라 일컬어지는 이원수의 동시 <찔레꽃>이다. 1930년 어린이 잡지 ≪신소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는 광산에서 일하는 언니를 배웅하고 마중하며 배가 고파 찔레나무 꽃잎을 따 먹는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이원수의 동시보다 이연실의 노래를 듣고 찔레꽃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찔레꽃은 화려한 색에 귀티가 나는 장미꽃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장미꽃이 한껏 멋을 부린 도시의 귀부인이라면 찔레꽃은 장날 나들이에 흰 무명 저고리와 치마를 깨끗하게 차려입은 옛 시골 여인이랄까. 하지만 찔레꽃은 장미보다 더 진하고 감미로운 향기를 지녔다. 만약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 찔레꽃을 찾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비록 꽃이 핀 그때 잠깐이나마 사람들의 발길을 향기가 돌려세운다.

예로부터 찔레꽃 향기는 유명했다. 송나라 시인 진관(秦觀)은 한 여인과 헤어져 몹시 그립고 슬픈 마음을 <상도미유감(賞酴醿有感)>, 즉 <찔레꽃을 완상하고 느낀 것이 있어라> 하는 시로 노래했다. 그 여인의 옷에서는 찔레꽃 향기가 났다.

“봄이 와도 모든 것이 눈에 안 들어오고 (春來百物不入眼) / 오직 이 꽃을 보고 단장의 슬픔을 견디네 (唯見此花堪斷腸) / 만약 무슨 일로 말미암은 큰 슬픔이냐 묻는다면 (借問斷腸緣底事) / 일찍이 비단옷에서 이 꽃 비슷한 향이 났다고 (羅衣曾似此花香)”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구양수도 <도미화(酴醿花)>란 시에서 “청명절에 가장 빼어난 향기 흩고 (清明時節散天香) / 가볍게 물든 거위 새끼처럼 조금 노랗네 (輕染鵝兒一抹黃) …”라고 했다.

 

 

찔레나무나 찔레꽃을 가리키는 酴醾(도미)는 본래 보리쌀로 빚어 흰빛이 나는 술이다. 아마 보리막걸리일 것이다. 송나라 때 편찬되어 나온 운서 ≪집운(集韻)≫에 “한편에서는 재강을 거르지 않고 마시는 보리술이라 한다(一曰 麥酒不去滓而飮)”고 했다. 다른 한자를 써서 찔레꽃을 가리키는 荼蘼(도미)와 색깔이 비슷해 酴醾(도미) 또한 찔레꽃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반대로 찔레꽃 색깔이 도미주와 비슷해 荼蘼(도미)라 했다는 설도 있다. 찔레꽃으로 담근 술 또한 도미 또는 도미주다. 어쨌든 찔레나무나 찔레꽃을 가리키는 한자 도미는 酴醾와 荼蘼 두 가지를 다 쓴다.

“도미꽃은 이미 때가 지났는데 (酴醾花已過) / 도미주는 술병에 가득하네 (酴醾酒滿壺) / 꽃은 시들면 다시 성하기 어렵지만 (花謝難再盛) / 술은 떨어져도 또 살 수 있네 (酒盡亦可沽) / 도미여 도미여 (酴醾復酴醾) / 살든 죽든 너와 함께하는구나 (生死與之俱)”

조선 전기의 문신 이행(李荇)은 <도미(酴醾)>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같은 글자이면서 뜻을 달리하는 酴醾로 재미있게 시를 지었다. 酴醾라고 하면 찔레꽃인지 도미주인지 헷갈리기 때문에 꽃 화(花) 자와 술 주(酒) 자를 넣어 뜻을 분명히 밝혔다. 산 것은 도미주요, 죽은 것은 도미꽃이다. 한 시절을 찔레꽃과 도미주를 벗하는 풍류를 읊었다.

농사짓는 백성들에게는 찔레꽃이 모내기 철을 알리는 꽃이다. 찔레꽃이 한창 피는 시기에 일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내기에 들어가야 한다. 가뭄이 들면 농군들의 가슴은 논보다 더 바짝바짝 탄다.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그때의 가뭄은 얼마나 한이 되었을까. 그래서 나온 말이 찔레꽃가뭄이다.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음력 5월 무렵에 드는 가뭄이라는 것이다.

이 찔레꽃가뭄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가뭄 드는 해에 찔레가 많이 난다는 속설까지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일성록≫에는 홍천의 유생 이광한이 정조에게 올린 농서의 요약 가운데 “한 해가 가물려고 하면 질려(蒺藜)가 납니다 (歲欲旱而蒺藜生)”라고 한 대목이 있다. 蒺藜는 찔레를 음차한 말이다. 원래 제주도와 남해안에 자라는 남가새를 가리키는 말인 蒺藜를 찔레의 뜻으로 쓰는 선비도 많았다.

또 찔레꽃과 관련해 찔레꽃머리라는 말도 있고, ‘찔레꽃 이리(찔레꽃 필 무렵)에 비가 오면 개 턱에도 밥알이 붙게 된다’는 북한 속담도 있다. 찔레꽃머리는 찔레꽃이 피는 철의 첫머리라는 뜻으로 아직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이고, 속담은 찔레꽃 피는 모내기 철에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는 뜻이다.

 

 

찔레나무의 꽃은 5~6월에 새 가지 끝에서 원뿔꽃차례로 핀다. 꽃잎은 5개로 보통 흰색이지만 연분홍색을 띠기도 하는데, 끝이 오목하게 파였다. 암술대는 연한 황록색으로 여러 개가 하나로 붙었다. 수술은 개수가 많으며, 수술대 색깔은 처음에 노란색이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흰색으로 변한다. 꽃받침, 꽃대와 작은꽃대(꽃자루)에 샘털이 있다. 꽃받침조각은 피침형으로 5개다.

열매는 팥알처럼 동그랗고 작으며 9~10월에 붉게 익는다. 이 열매는 씨방이 아니라 통꽃받침(악통)이 과육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위과(헛열매)라고 한다. 얇은 위과의 과육 속에는 씨방이 발달해 과실이 된, 우리가 보통 씨라고 부르는 여윈열매(수과)가 5개 이상 들어 있다.

수피는 어린 나무일 때 적록색이나 적갈색이었다가 수령이 많아지면 황갈색이 되어 세로로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줄기와 가지에 난 갈고리 같은 가시는 턱잎에서 비롯된 아까시나무와 달리 나무껍질이 변한 것이다.

잎은 5~9개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홀수깃꼴겹잎이 어긋나기를 한다. 잔잎은 끝이 뾰족한 타원형 또는 달걀꼴로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고 뒷면에 잔털이 났다. 잎줄기에도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더 알아보기]

◆ 식물과 관련한 세시

세시(歲時)는 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따른 때를 말한다. 식물과 관련지어 세시를 나타낸 말에는 찔레꽃머리 말고 여럿 있다.

앵월(櫻月)은 음력 3월의 다른 말로, 그달에 앵두꽃이 피는 데서 유래했다. 도월(桃月) 또한 복사꽃이 피는 음력 3월을 가리킨다. 포월(蒲月)은 음력 5월이다. 단옷날에 창포 잎을 문 앞에 매달아 악귀를 물리치는 풍속에서 유래했다. 매우기(梅雨期)는 매실이 익는 초여름의 장마철이다. 매실이 익을 즈음에 내리는 비를 매우라 한다. 난월(蘭月) 또는 난추(蘭秋)는 음력 7월이다. 당나라의 ≪초학기(初學記)≫에서 유래했다. 계추(桂秋)는 계화(목서의 꽃)가 피는 중추(음력 8월)라는 뜻이다. 죽소춘(竹小春) 또한 대나무가 한창 푸른 음력 8월이다. 국월(菊月)은 국화꽃이 피는 음력 9월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