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나무

개회나무는 회화나무보다 못한 나무?

나무입문 2020. 2. 28. 21:46

#개회나무

학명 : Syringa reticulata subsp. amurensis (Rupr.) P.S.Green & M.C.Chang.
분류 : 물푸레나뭇과 수수꽃다리속
형태 : 낙엽 활엽 작은큰키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암수한꽃
개화 : 5월 하순
결실 : 9~10월

개회나무꽃

개회나무는 지리산, 경북과 강원도의 고산, 이북에 자생하는 낙엽 활엽 작은큰키나무 또는 떨기나무다. 옛날 민간에서 정향나무라고 일컫던 나무다. 이 개회나무뿐 아니라 털개회나무, 수수꽃다리(토종 라일락) 등 수수꽃다리속 식물 모두를 그렇게 불렀다. 조선 숙종 때 홍만선이 ≪산림경제(山林經濟)≫ 양화(養花, 꽃 기르기) 편에 다룬 ‘정향’도 수수꽃다리속 나무다.

진짜 정향나무는 따로 있다. 인도네시아 몰루카제도가 원산지인 나무다. 그 이름은 말린 꽃봉오리가 못을 닮고 향기가 좋은 데서 유래했다. 정향나무 꽃봉오리를 말린 것이 바로 정향(丁香)이다. 이때의 한자 丁은 고무래나 장정(壯丁)이 아니라 어떤 물건에 두드려 박는 못을 말한다. 요즘 들어 정향은 향신료로 취급받지만 옛날 ≪본초강목≫, ≪동의보감≫ 등에서는 귀한 약재로 다루었다. 개회나무를 비롯한 수수꽃다리속 나무를 정향나무라 한 것은 그 꽃 생김새가 정향을 닮고 향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몰루카제도 원산 정향나무 꽃봉오리와 꽃
정향을 닮은 털개회나무(미스김라일락)
털개회나무(미스김라일락)
개회나무 꽃봉오리와 꽃

지금 쓰는 수수꽃다리속 나무 이름들은 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집≫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개회나무도 이 책에 나온다. 그보다 앞선 1922년의 ≪조선식물명휘≫에 지리산, 경기도 광릉, 평북 강계, 함북 최가령과 관모봉에서 조사한 개회나무가 수록되었고, 1923년 ≪조선삼림식물편 제10집≫에서는 개회나무가 평북에서 채록한 이름임을 밝혀 놓았다. 조선식물향명집 저자들은 이 개회나무를 기본종으로 삼아 수수꽃다리속 나무 일부를 털개회나무, 꽃개회나무, 털꽃개회나무, 버들개회나무, 섬개회나무 등으로 분류해 이름을 붙였는데, 이 이름들은 오늘날 그대로 쓰인다. 그렇지만 왜 개회나무라 했는지 이름의 유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저마다 추측해볼 뿐이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름이 있다. 1932년에 출간된 ≪토명대조 선만식물자휘(土名對照 鮮滿植物字彙)≫에 나온다. 저자인 무라다 시게마로(村田懋磨)가 식물분류학자가 아니라 박물학자여서 전문성이 떨어진다 해도 이 책은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가 조선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회나무는 정향나무, 정향화, 새발사향나무라 불렸다. 그 가운데 “앞쪽 끝이 네 개로 갈라진 통 모양의 작은 꽃이 뭉쳐서 달린다. 그 생김새가 새 발과 비슷하고 꽃다운 향기를 발산한다. 조선의 세간에서 새발(鳥脚) 사향나무(麝香木)라 부름은 아마 이것을 위함이다.”라고 해설한 문장이 눈길을 끈다. 수수꽃다리속 나무가 새발사향나무로도 불렸다는 것이다. 만약 조선식물향명집을 저술한 식물분류학자들이 개회나무 대신 새발사향나무를 채택했다면 사람들이 나무 이름을 기억하기 쉽고 그 뜻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개회나무가 기준이 되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의 접두사 ‘개’와 회화나무의 다른 이름인 ‘회나무’가 결합한 말이라는 설이 있다. 무리 지어 하얗게 핀 꽃이 회화나무와 비슷해 보이는, 가짜 회화나무라는 뜻이다. 이 설이 맞다면 개회나무에서 파생한 다른 나무들의 이름이 우스꽝스러워진다. 회나무 위에 ‘개’를 얹은 부실한 이름에 ‘털’이니 ‘꽃’이니 ‘긴 잎’이니 하는 특징적 수식어를 잔뜩 쌓은 것이 영 어색하다.

항간에 전해온 이름으로 개구름나무, 개정향나무도 있다. 북한에서는 귀룽나무를 구름나무라 한다. 흰 꽃이 무수하게 핀 그 모습이 구름 같았기 때문이다. 개구름나무는 꽃 핀 것이 구름나무 비슷하지만 그보다 못하다는 뜻을 지녔다. 자잘한 흰 꽃이 뭉텅이로 피는 개회나무는 구름나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개가 붙는 것은 유감스럽다. 개는 비하의 뜻을 담아 쓰는 그 ‘개 견(犬)’이나 ‘개 구(狗)’다.

개회나무꽃은 향기다. 과연 방향(芳香), 즉 꽃다운 향기라 할 만하다. 뭉게구름이 가지에 걸린 듯, 햇살을 받아 더욱 환한 꽃 무리 가까이 다가서면 진한 꽃향기가 온몸에 스민다. 보통 라일락 향이라고 하는 그 향기다.

꽃은 5월 말부터 지난해에 생긴 가지 끝에서 원뿔꽃차례로 핀다. 꽃봉오리와 만개했을 때의 꽃 모양은 수수꽃다리, 털개회나무, 꽃개회나무, 섬개회나무, 정향나무(이런 이름의 수수꽃다리속 나무가 있다.)와 다르다. 수수꽃다리, 털개회나무 등은 꽃통이 길어 정향을 닮았으나 개회나무는 버들개회나무, 긴잎개회나무와 함께 꽃통이 짧아 정향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수꽃다리속 나무의 꽃은 모두 암술 1개, 수술 2개를 지녔고, 그중에서 꽃술이 꽃통 속에 숨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개회나무꽃은 버들개회나무, 긴잎개회나무와 함께 꽃술이 꽃통 밖으로 드러나는 특징을 지녔다. 꽃받침과 꽃자루는 꽃잎과 마찬가지로 흰색이다. 꽃잎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이 4개로 갈라져 뒤로 굽는다.

9∼10월에 성숙하는 열매는 튀는열매(삭과)로, 긴 타원형에 약간 납작하고 표면에 좁쌀보다 작은 자잘한 돌기들이 나 있다. 완전히 성숙하면 갈색으로 변한 뒤 껍질이 말라 두 쪽으로 갈라지고 씨앗이 바람 등에 의해 흩어진다.

잎은 넓은 달걀꼴로, 끝이 급한뾰족끝(급첨두) 내지 점차긴뾰족끝(점첨두)이고 밑이 둥근밑(원저)이며, 가장자리가 톱니 없이 밋밋하며, 양면에 털이 없다. 잎차례는 마주나기다. 자세히 보면 그물 모양으로 뻗은 잔 잎맥을 잎 전체에서 볼 수 있는데, ‘그물 모양의(망상의)’라는 뜻을 지닌 종소명 레티쿨라타(reticulata)는 바로 이것에 근거한 것 같다.

개회나무 나무껍질은 한방에서 폭마자(暴馬子)라고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중국에서 폭마정향(暴馬丁香)이라 하는 개회나무의 별칭이 폭마자(暴馬子)다. 기침이나 가래에 개회나무 말린 껍질을 달여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피는 회갈색 내지 흑갈색으로, 회색 가로무늬와 가로로 긴 껍질눈이 있고, 바탕이 매끈한 편이다. 수령이 많아지면 겉이 세로로 갈라진다.

개회나무꽃
개회나무꽃
개회나무 열매
개회나무 잎
개회나무 수피
구름나무, 즉 귀룽나무의 개화
회나무, 즉 회화나무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