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오(草烏), 오두(烏頭)라는 한자 이름도 있다. 이 또한 깃발꽃잎처럼 생긴 가장 바깥의 큰 꽃받침이 까마귀 머리를 닮아 붙여진 것이라는 설, 뿌리가 까마귀 머리를 닮았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뿌리가 까마귀 머리를 닮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전혀 안 닮았다!
만약 초오(草烏), 오두(烏頭)라는 한자 이름이 뿌리에서 유래했다면, 뿌리를 갈아 즙을 내면 금세 까맣게 색이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가 까마귀 머리를 닮지 않았으니 한방에서 투구꽃의 뿌리를 가리키는 오두도 꽃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어린 뿌리 또는 곁뿌리는 부자(附子)라고 하여 한방에서 중풍, 신경통, 관절염 등에 쓴다. 투구꽃 뿌리는 옛날에 사약의 주재료였다. 푹 고아 한 사발 원샷하면 바로 황천으로 간다. 그렇기에 초오 또는 오두라고 하는 큰 뿌리나 원뿌리 대신 독성이 약한 어린 뿌리나 곁뿌리를 약으로 즐겨 썼을 것이다.
투구꽃에서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다. 2개의 아주 작은 꽃잎은 꽃받침 깊숙이 숨어 있다. 꽃잎의 손톱(가느다란 아랫부위)은 꽃대처럼 가늘고 길다. 꽃받침은 깃발꽃잎 1개, 날개꽃잎 2개, 용골꽃잎 2개로 이루어진 콩과 식물의 꽃처럼 생겼다.
함백산 등산로를 걷다 보면 몰지각한 사람이 풀꽃을 마구 캐 간 것이 눈에 들어온다. 흙이 파헤쳐진 모양새가 멧돼지의 짓이 아니다. 모종삽 등으로 깊이 파 내고 난 뒤 남는 흉물스런 흔적을 농촌 출신인 내가 모르랴. 정선군에서 야생화 단지를 만드느라 일부러 캐 갔을 수도 있지만 끝내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투구꽃을 고라이부시(高麗附子, 고려부자)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은 처음에 자기 나라에 투구꽃이 자생하지 않는 줄 알고 이런 이름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자생한다. 멸종위기 1급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아주 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