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이었다. 중1, 중3 두 아들과 마누라, 나, 그리고 마누라 친구 2명과 그 친구의 따님 1명. 이렇게 일행을 지어 1박 2일로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대피소는 겨우 연하천(벽소령일 수도 있다)을 예약할 수 있었다.
남자랍시고 냉동 오리고기 등 무게가 좀 나가는 것들을 내 배낭에 가득 넣었다. 거기다가 코스를 반대로 잡았다. 산청 중산리로 들어가 구례 성삼재로 빠져나오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수월하게 등산하려면 성삼재에서 천왕봉 갔다가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로 잡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야 비교적 완만한 코스를 가면서 배낭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그때는 다들 산행 경험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경사가 심한 코스로 오르려니 죽을 맛이었다. 천왕봉에 거의 도착해서는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배낭을 멘 어깨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아팠다. 수건을 몇 겹으로 접어 멜빵 밑에 대어도 도움이 안 됐다. 천왕봉에서 예약해놓은 대피소 방향으로 내려갈 때는 배낭을 마누라와 바꿨다. 더 이상 메면 어깨의 피부가 벗겨질 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예약해놓은 대피소까지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도중에 세석대피소로 다짜고짜 들어가 추위와 이슬을 피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행 가운데 우리 식구만 끝까지 종주했다.)
그때 이 고난의 행군을 꼭 기억하리라, 산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지리산에서 고생한 것을 떠올리면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는 잊었다. 간사하다. 인간은 대개 간사하다. 나도 간사하다. 어렵고 힘들 때, 더 어렵고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다시 일어나 깨치고 나갈 용기가 생긴다. 당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