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요곽소삼 불사구일

나무입문 2019. 10. 8. 07:56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시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경남 밀양 출신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리산을 고향의 산으로 여겼다.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지내던 성종 2년(1471) 추석에 조태허, 유극기, 한태원, 해공, 법종, 옥곤, 용산 등 친구, 승려, 구실아치(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와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천왕봉까지 다녀온 뒤 기행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다음은 그 글의 한 토막이다.

(지리산) 유람에 나선 지 겨우 닷새 만에 생각 정신 외모가 매우 넓어지고 쓸쓸해진 것을 갑자기 깨달았으니, 처자와 구실아치들이 나를 볼 때도 지난날과 같지 않으리라.

出遊纔五日 而頓覺胷次神觀 寥廓蕭森, 雖妻孥吏胥視我 亦不似舊日矣。( 출유재오일 이돈각흉차신관 요곽소삼, 수처노이서시아 역불사구일의。)

흉차(胷次)는 흉금(胸襟)과 같은 말로, 마음속 깊이 품은 생각을 뜻한다. 마음을 뜻하는 흉금(胸琴)과 다르다. 신관(神觀)은 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정신과 외관이다. 요곽(寥廓)은 크게 넓다, 즉 매우 넓다는 뜻. 소삼(蕭森)은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는 뜻인데, 쓸쓸한 심정을 읊조린 옛시에서 더러 볼 수 있다. 김종직의 글에서는 서늘해졌다, 고고해졌다고 봐도 된다. 처노(妻孥)는 처와 자식을 함께 나타내는 말 처자(妻子)와 같다. 의(矣)는 추측할 때 쓰이는 허사다.

산을 다녀온 나는 요곽소삼(寥廓蕭森)하니 불사구일(不似舊日)이다. 새롭게 가자.

이하 사진은 지리산이 아니라 오대산 노인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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