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내하(吾民奈何)
-우리 백성들은 어찌하겠습니까?
봉우리 곁에 있는 소년대(少年臺)는 푸른 절벽이 만 길이다. 이른바 ‘소년’이란 아마 (신라 화랑) 영랑(永郞)의 무리일 것이다. 돌 모서리를 안고 아래를 살펴보았더니 추락할 것만 같았다. 따르는 자들에게 한옆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일렀다.
(少年臺 在峯側 蒼壁萬尋。所謂少年 豈永郞之徒歟。余抱石角 下窺 若將墜也。戒從者 勿近傍側。소년대 재봉측 창벽만심. 소위소년 기영랑지도여. 여포석각 하규 약장추야. 계종자 물근방측.)
그때 구름과 안개가 흩어져 사라지고 햇살이 내리비치자 산 동서 계곡이 확 트였다. 그곳을 바라보니 잡목은 없고 모두 구상나무, 전나무, 소나무, 녹나무였는데, 말라 죽어 뼈만 남아 서 있는 나무가 삼분의 일을 차지했고, 간간이 단풍나무가 섞여 정말 그림 같았다.
(時 雲霧消散 日脚下垂 山之東西 谿谷開豁。望之 無雜樹 皆 杉檜松枏 槁死骨立者 居三之一 往往 間以丹楓 正如圖畫。시 운무소산 일각하수 산지동서 계곡개활. 망지 무잡수 개 삼회송남 고사골립자 거삼지일 왕앙 간이단풍 정여도화.)
그 산등성이에 있는 나무들은 바람과 안개에 시달려 가지와 줄기가 모두 왼쪽으로 쏠리고 주먹처럼 둥글게 말린 데다 구름 같은 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其在岡脊者 困於風霧 枝榦皆 左靡拳曲 雲髮飄颺。기재강척자 곤어풍무 지간개 좌미권곡 운발표양.)
(그때 스님이) “(지리산 이곳에는) 잣나무가 아주 많아 토박이들이 가을마다 잣을 채취해 공물 액수를 채우는데, 올해는 잣송이 달린 나무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다 채워 거두려 한다면 우리 백성들은 어찌하겠습니까? 수령이 마침 보았으니, 이는 다행입니다.”라고 했다.
(云 海松尤多 土人 每秋採之 以充貢額 今歲 無一樹 帶殼。苟取盈則 吾民奈何。守令適見之 是則幸也。운 해송우다 토인 매추채지 이충공액 금세 무일수 대각. 구취영즉 오민내하. 수령적견지 시즉행야.)
―점필재 김종직, <유두류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