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곤충

꿀벌의 시계( 視界)

나무입문 2019. 10. 15. 21:02
봄꽃이 세상을 화사하게 물들였다가 물러간 5~6월에는 풀과 나무에서 흰 꽃들이 핀다. 이때 흰 꽃은 여러 색깔로 피어난 전체 꽃 가운데 40~50퍼센트를 차지한다. 흰 꽃이 자주 눈에 띄어 으레 여름에는 식물들이 흰 꽃을 피운다고 여기기 쉽다.

여름에는 왜 흰 꽃이 많을까? 짙게 우거진 녹음 속에서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주는 꿀벌의 눈에 잘 띄게 하려고 흰 꽃을 피우는 전략을 택한 식물이 많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꿀벌은 우리 사람처럼 흰색을 흰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볼 수 있는 빛의 영역이 다르다. 사람은 적외선,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자외선 가운데 적외선과 자외선은 볼 수 없다. 꿀벌은 주황부터 자외선까지 볼 수 있다. 따라서 꿀벌에게 빨강은 볼 수 없는 색, 즉 검은색으로 인식된다. 흰색은 파랑과 초록을 섞어놓은 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식물이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줄 꿀벌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흰 꽃을 피웠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지는 햇빛을 반사해 꽃을 더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흰색 꽃잎을 달고 있는지 모른다. 꿀벌이 흰색을 흰색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까지는 식물이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꿀벌은 흰 꽃을 잘 찾아가 꿀을 따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어둑신한 녹음 속에서 꽃이 희게 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보이기는 보인다. 꽃술의 노란색은 짙은 그늘에서 흰색 반딧불이처럼 빛난다. 꿀벌은 달콤한 꿀의 향기로도 꽃을 찾을 수 있으니 그 꽃이 어떤 색이든지 상관없다.
 
일본 농생물학자 가쿠타니 다케히코는 벌 중에서도 꿀벌과 호박벌류는 색을 잘 구분하고 꽃벌류와 나비는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벌이라고 모두 똑같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닌 모양이다. 심미안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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