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백성에게 차마 못할 짓이다
증봉(甑峯)을 지나 습지 평원에 이르렀을 때 길을 마주한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문틀 모양으로 굽었기에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고개를 숙이거나 등을 구부리지 않았다.
(歷甑峯 抵沮洳原 有楓樹當徑 屈曲狀棖闑由 之出者 皆不俛僂。역증봉 저저여원 유풍수당경 굴곡상정얼유 지출자 개불부루.)
평원은 산등성이에 있는데도 5, 6리쯤 편평하게 트여 수풀이 우거졌고 샘물이 휘돌아 흘러가 농사지어 먹고살 만했다.
(原在山之脊也而 夷曠可五六里 林藪蕃茂 水泉縈廻 可以 耕而食也。원재산지척야이 이광가오륙리 임수번무 수천영회 가이 경이식야.)
계류 위쪽에 몇 칸 되는 초막이 보였는데, 섶나무 울타리를 둘렀고 흙구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병영에서 매를 포획하는 막사였다.
(見 溪上草廠數間 周以柴柵 有土炕 乃內廂捕鷹幕也。현 계상초창수간 주이시책 유토강 내내상포응막야.)
내가 영랑재(永郞岾)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산과 언덕 곳곳에 매 잡는 도구가 설치된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가을 기운이 높지 않아 당시 포획하는 사람은 없었다.
(余 自永郞岾 至此 見岡巒處處 設捕鷹之具 不可勝記。秋氣未高 時 無採捕者。여 자영랑재 지차 견강만처처 설포응지구 불가승기. 추기미고 시 무채포자.)
매야말로 은하수 사이를 날아다니는 동물이다. 어찌 높고 가파른 땅에 풀 따위로 가린 덫을 놓고 엿보는 자가 있는 줄 알겠는가. 미끼를 보고 욕심을 부리다가 갑자기 새그물에 걸리고 줄과 고리에 제압당하니, 역시 사람을 경계할 만하다고 하겠다.
(鷹準 雲漢間物也。安知峻絶之地 有執械豊蔀而伺者。見餌而貪 猝爲羅網所絓 絛鏇所制 亦可以儆人矣。응준 운한간물야. 안지준절지지 유집계풍부이사자. 견이이탐 졸위나망소괘 조선소제 역가이경인의.)
그리고 저 매의 진헌(進献)은 고작 한두 마리에 불과한데, 놀이를 충족하기 위해 메추라기 옷차림으로(누더기를 입고) 한 끼 저녁밥을 먹는 자로 하여금 밤낮으로 눈바람을 견뎌가며 천 길 산봉우리 꼭대기에 엎드려 숨어 있게 하는 것은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다.
(且夫進献 不過一二連 而謀充戱玩 使鶉衣啜飧者 日夜耐風雪 跧伏於千仞峯頭 有仁心者 所不忍也。차부진헌 불과일이연 이모충희완 사순의철손자 일야내풍설 전복어천인봉두 유인심자 소불인야.)
―점필재 김종직, <유두류록> 중
※ 有執械豊蔀而伺者 : 有(유)는 있다, 執(집)은 처리하다, 械(계)는 틀이나 덫, 豊蔀(풍부)는 풀 따위로 덮거나 가리는 것(‘거적’, ‘덮다’, ‘가리다’ 뜻으로 쓰임), 而(이)는 순접의 연사(접속사), 伺(사)는 엿보다, 者(자)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