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나무
학명 : Stephanandra incisa (Thunb.) Zabel
분류 : 장미과 국수나무속
형태 : 낙엽 활엽 떨기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암수한꽃
개화 : 5월 하순
결실 : 9~10월
국수나무는 어느 산에나 흔한 떨기나무다. 들을 낀 야산이나 마을 동산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 숲을 풍성하게 하며 땔나무로 잘라내도 뿌리에서 움이 또 나오는 나무다. 덤불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이 국수나무를 보면 된다. 한 떨기로 단출한 법이 없다. 여러 나무가 국숫발 같은 가느다란 가지를 서로 들이밀고 ‘너저분하지 않은’ 덤불을 이룬다. 국수나무는 국수보다 역사가 길지만, 국수가 생기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제 이름을 얻었다.
우리나라 국수가 처음 언급된 것은 송나라 사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다. 그는 1123년 인종 원년에 한 달 남짓 고려에 머물다가 돌아간 뒤 모든 방면의 견문을 40권의 책으로 남겼다. 제22권 ‘향음(鄕飮)’에 “나라 안에 밀이 적은데, 모든 상인이 산동에 와서 사기 때문에 국숫값이 자못 비싸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國中少麥 皆賈人販自京東道來 故麵價頗貴 非盛禮不用)”고 했다. 1390년 공양왕은 사대부 집안 제사를 간소하게 하려고 제물을 규제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1품부터 6품까지는 국수를 올리고, 7품과 서인(庶人, 백성) 가운데 관직에 있는 자는 국수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삼국 시대 유적지에서 탄화된 밀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그 시대에 밀 농사를 지었다고 하지만 드물게 지어 밀과 국수가 귀했다.
“은색 산봉우리 덧창문 앞에 무리를 짓고 (簇成銀嶺擁窓前) / 옥수레 굴려 만들어 길가에 버려두었네. (推作瓊輪委路邊) / 이것이 흰 소금과 밀가루라면 (若是白鹽兼粉麪) / 자기 집 뜨락의 것도 혼자 쓰기 어렵겠네. (自家庭砌尙難專)” 고려 문장가 이규보의 시 <영설(詠雪, 눈을 읊다)>의 한 대목을 보아도 어느 정도 귀했는지 헤아릴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오죽하면 ‘국수 먹이다’라는 익은말(관용어)이 나왔을까. 경사스러운 혼례식에 하객을 대접하는 음식이 국수였기에 혼례를 올리는 일이 ‘국수 먹게 하는 것’이 되었다. 찬 음식을 먹는 명절 한식날에 한식면(寒食麪)을 먹는 풍습 또한 국수를 지금처럼 시시한 음식으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굶어 죽지 않으려면 식물에 기댈 수밖에 없다. 곡식이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배를 채우는 초식 동물이 된다. 아사를 면하게 하는 우리나라 구황식물에는 850여 종이 있다고 한다. 그중 조선 후기의 ≪임원경제지≫에 260종, 일제강점기의 ≪임업시험장보고 제33호, 조선산 야생 식용 식물≫에 304종이 식용법과 함께 소개되었다.
국수나무는 여기에 구황식물로 나오지 않는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는 줄기와 가지의 고갱이가 국숫발을 닮아 국수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줄기와 가지를 세로로 쪼개면, 줄기에서는 황갈색이고 가지에서는 황백색인 퍼석한 고갱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추나무, 댕강나무, 병꽃나무, 수국과 산수국, 고광나무 등도 마찬가지로 국숫발 같은 고갱이를 지녀 그것만으로 나무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가지와 줄기가 국수 가락처럼 가느다랗고 매끈해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빈 바가지같이 헛헛한 배를 안고 들일을 나가야 했던 농군들이 있었다. 그때 들머리나 길가에 그득 피어 있는 흰 꽃을 보고 그처럼 고운 밀국수 한 그릇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지 모른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수나무를 소미공목(小米空木)으로 적는다. 공목은 줄기 속이 비었거나 비게 된다는 뜻이다. 소미의 뜻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똑같다. 좁쌀이란 뜻이다. 꽃이 좁쌀처럼 자잘하게 피고 줄기 속이 빈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소미공목이다. 일본의 소미(고고메)는 싸라기다. 싸라기 같은 꽃이 핀다는 것이다. 한국・중국・일본 모두 먹을거리를 연상해 나무 이름을 지었다. 제 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목구멍에 풀칠하기 바빴던 모든 백성의 소박한 바람이 깃든 나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국수나무는 실속 없이 무성한 채 마냥 헛물만 들이켜게 하지 않는다. 먹을 수 있다. 봄에 찔레순처럼 돋는 새순을 꺾어 나물로 먹는다. 나무가 무르고 약해 싸리처럼 요긴하지는 않았지만, 옛사람들은 국수나무 줄기로 삼태기, 닭둥우리, 어리, 바자 같은 가재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꽃은 5월 하순부터 6월에 걸쳐 새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분지(分枝)하는 총상꽃차례의 원뿔꽃차례로 핀다. 꽃잎은 5개로 피침형 또는 주걱꼴이고 흰색이다. 밑부분에서 꽃잎과 붙은 5개의 꽃받침조각은 끝이 무딘 삼각형 내지 긴달걀꼴로, 꽃잎보다 짧지만 흰색이어서 꼭 꽃잎처럼 보인다. 가장자리에는 잔털이 있다. 이 꽃받침은 꽃잎이 말라 시들어 없어진 뒤 점차 녹색으로 바뀌며 열매와 함께 성장한다. 꽃술은 암술 1개, 수술 10개다.
쪽꼬투리열매(골돌과)로 분류되는 열매는 9~10월에 성숙하는데, 지름 2~3밀리미터의 둥근꼴로 겉에 잔털이 있고, 넓은 거꿀달걀꼴 씨가 1~2개 들었다.
잎은 긴 삼각형 또는 달걀꼴 삼각형이고, 가장자리가 겹톱니로 깊게 갈라지거나 4~5쌍으로 갈라진다. 잎끝은 점차긴뾰족끝이고 잎밑은 심장형 또는 잘린밑(절저)이다. 앞면에 잔털이 희미하게 났고, 뒷면 맥 위에 잔털이 있다. 잎차례는 어긋나기다.
수피는 회갈색으로 매끈하다가 수령이 많아지면 겉이 갈라져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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