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나무

노나무와 미국개오동

나무입문 2020. 7. 20. 09:07

미국개오동

학명 : Catalpa speciosa (Warder ex Barney) Warder ex Engelm.

분류 : 능소화과 개오동속

형태 : 낙엽 활엽 큰키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암수한꽃

개화 : 6월 하순

결실 : 10

미국개오동꽃. 오동이란 말이 들어갔지만 오동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다.


개오동만큼 억울한 나무도 없다. 이름에 라는 말이 붙어 불릴 만한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꽃과 잎이 오동나무를 닮아 개오동(Catalpa ovata)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미국개오동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자생수가 아니다. 중국에서 들어왔다. 미국개오동은 1905년경부터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개오동은 정확히 언제 전래되었는지 모른다. 조선 시대 문헌에 재목(梓木), 재수(梓樹), 가목(榎木檟木), 가수(榎樹檟樹), 가오동(假梧桐) 등의 나무 이름이 나올 따름이다. 개오동은 1922조선식물명휘에 ᄀᆞㅣ오동(개오동)이라 했고, 1937조선식물향명집에 개오동이라 했다. 가짜 오동, 즉 오동이 아닌 나무란 뜻의 가오동이 오동보다 못하다는 뜻의 개오동이 되어버렸다. 가오동이나 개오동이나 오십보백보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개오동은 오동나무와 비교해 완상(玩賞)이나 쓰임새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 개오동 목재는 비중이 0.47로 소나무와 비슷하고, 비중 0.29인 오동나무보다 훨씬 무겁다. 내구성이 있고 탄력이 좋으면서 가공하기 쉬워 옛날에 여러 용도로 쓰였다. 가구, 가야금ㆍ거문고 같은 악기의 밑판, 바둑판, 인쇄용 목판 등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중국에서는 목재로 쓰기 위한 개오동과 누에를 치기 위한 뽕나무를 마을이나 밭가에 심었다. 그래서 개오동 재()와 뽕나무 상() 자를 쓴 재상과 개오동을 심은 마을 재리(梓里)’는 고향을 뜻하게 되었다. 이 말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의 선비들도 썼다. 목공을 일컫는 재장(梓匠)과 재인(梓人), 바둑판을 가리키는 추평(楸枰), 목판에 글을 새겨 인쇄하거나 책을 발간한다는 뜻의 부재(付梓) 또한 개오동에서 나온 말이다.

노나무꽃, 즉 개오동꽃. 미국개오동과 달리 꽃부리의 색깔이 황백색이다.

뽕나무와 개오동은(維桑與梓) / 반드시 공경하게 되나니(必恭敬止) / 우러러봄에 아버지 아님이 없고(靡瞻匪父) / 의지함에 어머니 아님이 없다(靡依匪母)”.

시경<소변(小弁)>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를 두고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말했다. “뽕나무, 개오동 두 나무는 옛사람들이 다섯 묘()의 밭이 딸린 집 담장 아래에 심음으로써 누에를 치고 기물을 만들 수 있도록 자손에게 물려준 것이다. () 뽕나무와 개오동은 부모가 심었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뽕나무와 개오동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 소변 시구의 뜻이다.

개오동을 뜻하는 한자는 다른 나무를 함께 가리켜 혼란스럽다. 한자 ()()는 팽나무, ()()는 가래나무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한자로 된 옛글을 사람마다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 한 예로 옛날에 임금이나 왕족의 관을 재궁(梓宮)이라 했는데, 이 또한 가래나무로 만든 관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 춘추 시대, 월나라 왕 구천과 원수지간이던 오나라 왕 부차는 간신 백비의 꾐에 넘어가 충신 오자서에게 자결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오자서는 부차가 내린 검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 전 측근들에게 말했다. “내 무덤 위에 반드시 재목(梓木)을 심어 (오나라 왕 부차의) 관을 삼도록 하라. (必樹吾墓上以梓 令可以爲器)” 사기, 설원등에는 오나라 왕의 관을 짤 나무가 재()로 나오지만, 춘추좌전에는 가(), 즉 개오동으로 나온다. “내 무덤에 개오동을 심어라, 개오동은 (부차의 관에 쓸) 재목이 될 수 있다. 오나라는 장차 망할 것이다. 3년 뒤에 곧 약해질 것이다. (樹吾墓檟 檟可材也. 吳其亡乎. 三年其始弱矣.)”

가래나무는 성장이 빠르다고 하지만 재목으로 쓰려면 적어도 수령 30년 내지 35년이 되어야 한다. 이에 비해 개오동은 10년이 넘으면 재목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가래나무를 호도추(胡桃楸), 개오동을 재()로 표기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오자서가 말한 재()는 개오동이고, 임금을 비롯한 왕족의 관을 가리키는 재궁(梓宮) 또한 가래나무 관이 아니라 개오동 관일 가능성이 많다. 조선 시대에 재궁이란 말을 썼어도 실제로 쓴 널감은 대부분 소나무라 한다.

개오동의 한자 이름은 옛날 중국 사람들도 혼란스러워했다. (), (), (), (), 이들은 개오동을 가리키는 말이면서 때에 따라 다른 나무를 나타냈다. 본초강목에는 재()나무의 왕이라 한 것도 나온다. 남송 사람 나원이 지은 이아익(爾雅翼)의 내용을 인용해 “‘지은 집에 이 나무가 들어 있으면 다른 재목들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것으로 나무의 왕이라 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는 개오동이다. 만약 가래나무라고 한다면 같은 속의 호두나무는 어떻겠는가. 호두나무에서 나온 나무는 누구나 알아주는 최고급 목재다.

개오동은 우리 조상들이 벼락이 피해 가는 나무라고 뇌신목(雷神木) 또는 뇌전동(雷電桐)이라 부르며 신성시했다는 설이 있다. 그런 기록은 우리나라 옛 문헌은 물론 중국 문헌에도 없다. 일본 문헌에만 나온다. 1936년 일본 잡지 가사와 위생(家事衛生)에 미야미나미 유타카(宮南 裕)라는 사람이 <벼락과 식물(植物)>이란 글을 연재했다. 10월호에 실린 내용 중 일부의 대강은 이렇다.

‘1851년 발행된 일본 생활백과사전 광익비사대전(廣益秘事大全)에 따르면, 개오동을 뜰에 심어 놓으면 벼락을 맞지 않을뿐더러 집의 목재로 사용해도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훈간(倭訓栞)에도 개오동을 심으면 벼락이 치지 않아 뇌전동(雷電桐)이라 이름했다고 쓰여 있다. 대화본초(大和本草)에서 개오동 나무가 들어간 집은 다른 재목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 것(사실은 본초강목을 베낀 글지은이)은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사실을 의미한다.’

벼락을 피하기 위해 개오동을 심는 것은 일본 풍속이다. 지금도 도쿄 우에노공원 안에 위치한 우에노도쇼구(上野東照宮)라는 신사에는 1651년 신전 건립 당시 벼락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심었다는 개오동이 노거수로 남아 있다.

우에노도쇼구(上野東照宮) 신사의 개오동. 팻말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원하고 심었다는 설명을 해 놓았다. (사진: https://4travel.jp/travelogue/10199311)

우리는 집, 마을과 그 주변 등 이런저런 곳에 개오동을 심었고, 중국을 따라 무덤 주위에 심기도 했다. 조선 숙종 때 백성들이 오랫동안 무덤가에 심어 가꾼 소나무와 개오동[]을 군영의 군사들이 마구 베어 땔나무로 쓴 폐해가 발생했다는 보고와 간언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렸다.

중국에서 무덤가에 개오동을 심은 것은 뽕나무와 개오동은 반드시 공경하게 된다는 시경 시구절의 영향으로 보인다. 다만 뽕나무는 그 발음이 ()으로서 죽다는 뜻의 ()과 거의 같기 때문에 무덤가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묘지수로 가래나무를 심기도 했는데, 중국에서 개오동을 가리켜 추()라 한 것을 가래나무로 받아들인 탓이다. 주로 소나무와 개오동을 묘지수로 썼기에 송추(松楸)라는 말도 나왔다. 한자로 된 옛글에서 松楸는 소나무ㆍ개오동 또는 소나무ㆍ가래나무가 아니라 무덤 주위에 심는 나무, 나아가 조상의 무덤을 말한다.

개오동의 별칭은 꽤 된다. 황화추(黄花楸), 재백수(梓白樹), 목각두(木角豆), 강두수(豇豆樹), 노나무. 그러나 여기에서 노나무를 제외한 것들은 모두 중국 별칭이다. 황화추라 한 것은 꽃부리가 노란색을 띠기 때문이고, 재백수라 한 것은 개오동 껍질을 재백피라 부르며 약으로 썼기 때문이고, 목각두와 강두수라 한 것은 그 열매가 동부라고 하는 콩과 식물의 열매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부의 다른 이름이 강두, 각두다.

다른 이름은 몰라도 순우리말로 된 노나무는 꼭 기억해둘 만하다. 열매가 기다란 노(노끈)처럼 보인다고 부르던 이름이다. 조선 후기에 나온 물명고()는 노나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이름을 제쳐 두고 개오동이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이 된 것은 매우 안타깝다. 노나무라 해도 된다. 노나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개오동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국내에 개오동 외에 재배종으로 여러 개오동속 나무가 중국과 미국에서 들어와 있다. 미국개오동도 그중 하나로, 국내에 갓 들어왔을 당시 붙여진 이름은 황금수(黃金樹). 일본과 중국도 이름이 같았다. 그러다가 일본은 큰미국개오동이란 뜻의 오오아메리카키사사게(大亜米利加木大角豆)로 바뀌었고, 중국은 오늘날까지 황금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항간에 미국개오동이 철도 침목 생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여겨져 황금수라 했다는 정보가 나도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개오동은 가을에 단풍이 들지 않는 개오동과 달리 노랗게 잎이 물든다고 황금수라 했다. 기후와 지역에 따라 잎이 갈색으로 변하거나 가끔 푸른 상태로 져버리지만 원래 황금색 단풍이 들어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양개오동이라 했다.

개오동과 미국개오동의 가장 큰 차이는 꽃 색깔에 있다. 꽃부리 색깔이 개오동은 황백색이지만 미국개오동은 흰색이다. 그래서 미국개오동의 중국 별칭이 흰꽃개오동을 뜻하는 백화재수(白花梓树). 이 둘은 잎에서도 차이가 난다. 개오동은 보통 잎이 3~5개로 얕게 갈라지지만, 미국개오동은 달걀꼴 타원형의 잎 가장자리가 갈라지지 않고 밋밋하다.

미국개오동과 가장 비슷한 나무에는 꽃개오동(C. bignonioides)이 있다. 미국개오동은 미국 북부가 고향이고, 꽃개오동은 미국 남부에 스스로 살던 나무다. 이 둘은 구분하기 어려운데, 잎에 상처를 내어 코를 대어보았을 때 고약한 냄새가 나면 꽃개오동이고 아무 냄새가 나지 않으면 미국개오동으로 본다.

단풍이 들어가는 미국개오동 잎
미국개오동꽃
미국개오동꽃
미국개오동 잎
개오동 잎
미국개오동 열매
개오동 열매
미국개오동 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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