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에 손을 담그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알알 깨어나는 지난날의 추억
부엌 자욱한 청솔 연기
몰래 눈물 훔치던 어머니도
보리 까끄라기 멱살 잡힌 아버지도
붉은 맨발 흰 고무신에 청춘을 싣고
한겨울 도회지 공장을 도망쳐
고향 칼바람 앞에 피식 웃던 형도
고운 단풍에 파묻힌 저녁
그래 잘살아
소리쳐 울며 골목길을 뛰어간
그 어린 여인도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아내도
꾸중 듣던 아이들도
뼛속에 얼얼 자리를 잡는다
안개와 어둠 속의 길을
돌부리와 가시를 괴로워하고
끝내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온
들짐승
사람이어서 미안합니다
나만 아파하던 날들을 세죄합니다
찬물에 두 손을 담그고 빌어
비로소 나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