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 : Viburnum opulus var. calvescens (Rehder) H. Hara
분류 : 연복초과 산분꽃나무속
형태 : 낙엽 활엽 떨기나무
암수 : 암수한그루
개화 : 5월 중순
결실 : 9~10월
꽃은 식물이 종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화려한 의식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를 복제하려는 욕망을 지녔다. 35~40억 년 전 지구에 나타나 진화를 거듭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몸속에 종족 보존을 꾀하는 유전자를 가져 그럴 것이다. 식물은 늘 외부 환경에 대응해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생명을 잇고 퍼뜨렸다. 계절의 변화는 나무를 특히 긴장하게 했다. 물질대사를 거의 멈추어야 하는 겨울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한대 지방에서 나무가 해마다 꽃을 피우는 것은 겨울이라는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 곧장 후세를 남기려는 ‘의지와 행위’가 바로 개화인 것이다.
늘 무더운 열대 지방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살기가 다른 지역보다 좋아 해마다 꽃을 피우지 않을 뿐이다. 나무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또다시 꽃을 피우는가 하면 몇 년 만에 겨우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환경은 낮은 온도와 적은 강우량이다.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의 경우, 9~11주 동안 일평균 기온이 25.7도씨를 밑돌고 그 시기에 비가 182밀리미터 이하로 적게 내리자 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 나무가 평소와 달리 위기를 느끼고 개화 유전자 발현을 통해 꽃을 피운 것이다.
백당나무는 다른 나무와 마찬가지로 종을 보존하기 위해 해마다 느지막한 봄에 꽃을 피우지만 좀 특별한 전략을 구사한다. 높이 2~7미터 떨기나무로서 큰키나무의 그늘에서 꽃이 돋보이도록 공을 더 들였다. 열매를 많이 맺으려고 자잘한 꽃을 잔뜩 피우고, 그것으로만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주는 곤충을 불러들이기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제법 큰 헛꽃으로 둘레를 장식했다. 마치 소녀가 머리에 화환을 쓴 것 같다.
장차 열매를 맺는 꽃은 수술과 암술을 모두 갖춘 유성화(有性花)이고, 장식으로 핀 꽃은 꽃술이 기능하지 않는 무성화(無性花)이다. 백당나무 꽃차례는 우산 모양의 꽃차례가 위로 연속되는 겹우산꽃차례인데, 바깥쪽 굵은 꽃대마다 2개의 무성화가 달린다. 산수국, 털설구화 ‘라나스’(속칭 라나스덜꿩나무) 등이 이와 비슷한 꽃을 피운다. 민들레, 해바라기, 코스모스, 구절초 등의 국화과 식물도 혀 모양의 무성화를 지녔지만, 정말 꽃처럼 보이는 것은 백당나무, 산수국, 수국, 라나스덜꿩나무, 나무수국 같은 나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당나무꽃은 꽃부리가 5개로 갈라진 통꽃이고, 수술 5개와 암술 1개의 꽃술을 지녔다. 매우 짧은 암술대의 암술머리는 2개로 갈라졌다. 통꽃받침은 깔때기 모양으로 길이가 짧고, 그 끝에 5개로 갈라진 꽃받침조각은 둔하고 짧다. 반면 무성화의 꽃받침조각은 타원형으로 기름하다. 백당나무 무성화에는 꽃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성화의 꽃술처럼 발달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뿐이다.
백당나무란 이름은 꽃이 흰색이고 절(불당)에서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지어졌다고 한다. 한자가 아닌 순 한글로 된 이름이다. 1937년 우리나라 초기 식물분류학자들이 펴낸 ≪조선식물향명집≫에 백당나무 속칭을 불두화로 표기했으니 그럴 만하다. 불두화는 열매를 맺지 않는 떨기나무로서 백당나무를 개량해 무성화만 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풀은 맥문동이 사랑스럽게 돋았고(草愛抽書帶) / 꽃은 불두화가 비쳐 보이네(花看映佛頭)…” 조선 전기의 학자 서거정의 시 <원림(園林)>에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원예수로서 불두화의 역사는 장구하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까마득한 옛날에 백당나무에서 불두화가 갈라져 나왔다면, ‘개량’했다기보다 무성화가 유난히 많이 달리는 변종을 꾸준히 육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백당나무 이름이다. 거기에는 ‘Viburnum Sargentii Koehne’이라는 학명과 ‘カンボク’라는 일본명을 먼저 적고, 이어 로마자 표기로 ‘Ĝamagwebab-namu’, 한글 표기로 ‘까마귀밥나무(불두화)’로 적었다. 일본에서 간보쿠(カンボク, 肝木)라 부르는 나무는 지금의 백당나무가 맞다. 현재 까마귀밥나무(Ribes fasciculatum var. chinense Maxim.)라 하는 것은 ‘가마귀밥여름나무’라고 실려 있다. 조선식물향명집 집필진이 잘못 기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당나무는 불두화, 개불두화, 까마귀밥나무, 민백당나무, 청백당나무, 접시꽃나무로도 불렸다고 하니 그중 까마귀밥나무를 이름으로 채택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꽃송이가 접시를 닮았다고 접시꽃나무라 부른다.
굳은씨열매로 분류되는 열매는 콩알만 하고 9월부터 붉게 익어 11월이 되면 과육이 물러진 뒤 쪼그라든다. 씨앗은 단단한 핵으로 싸여 동글납작하다. 빨갛게 익은 백당나무 열매는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쓴맛이 대부분이고 냄새가 좋지 않다. 새들도 기피하다가 먹이가 부족한 봄이 되어서야 따 먹는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기침을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한다.
잎은 달걀꼴 또는 넓은 달걀꼴에 세 갈래로 갈라졌다. 그 가운데 세 갈래로 갈라지지 않고 달걀꼴이나 거꿀달걀꼴을 한 잎도 더러 있다. 나뉜 잎 조각의 끝은 대개 뾰족하며, 그 가장자리에 불규칙적이고 거친 톱니를 가졌다. 2~3.5센티미터의 잎자루 끝에는 2개의 꿀샘이 있고, 잎자루 밑에는 송곳 모양의 작은 턱잎이 2개 난다. 잎 뒷면 맥 위에 잔털이 있다. 주맥은 잎밑에서부터 세 갈래 나뉜 잎의 중앙부로 부챗살처럼 뻗는다. 단풍나무나 계수나무 잎처럼 한 점에서 뻗어 나간 주맥이 많지 않지만, 이 또한 장상맥(掌狀脈)이다. 잎차례는 마주나기를 한다.
수피는 황갈색 또는 갈회색에 코르크질이고 세로로 자잘하게 갈라진다. 새로 만들어진 그해의 가지에는 능선이 있다.
백당나무는 우리나라 전국 산에 자생하지만 아무러하게나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화단, 길가, 공원 등에 심어 놓은 조경수를 만나는 것이 더 쉽다. 한방에서는 백당나무 어린 가지와 잎, 열매를 계수조(鷄樹條)라 부르며 약으로 쓴다. 계수조란 말은 사실 백당나무의 중국명이다. 한자의 간체자 표기는 鸡树条다. 잎과 줄기가 닭발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한의학계에서 쓰는 생약명은 중국의 식물명이나 전통 용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자연 >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태나무는 쓴테나무 (2) | 2020.01.24 |
---|---|
소태나무 암꽃과 수꽃, 소태나무 유래 (0) | 2020.01.21 |
세로티나벚나무 (0) | 2020.01.18 |
아몬드나무 (0) | 2019.10.24 |
윤노리나무 열매 (0) | 2019.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