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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나무입문 2019. 8. 29. 23:54
문장을 잘 다룬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的) 알레르기를 가진 이가 있다. 우리말 공부를 꽤 했을 것이다. 한문에서 온 이 적을 남발해서는 안 되겠지만 너무 까탈스럽게 피하거나 고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마구 고치려 드는 사람은 대개 편집증이 있는 편집자다.

한문의 허사에서 的은 ‘~의’, ‘~한’, ‘~스런’을 뜻한다. 기미독립선언서는 국한문을 섞어 썼다. 여기에는 한글 ‘~의’와 한문 ‘~的’이 함께 있다. 民族的良心(민족적 양심), 苦恥的財產(고치적 재산)…. 민족적 양심은 민족의 양심이다. 고치적 재산은 고치한 재산, 즉 괴롭고 부끄러운 재산이다. 요즘 우리가 쓰는 ~적에도 이것이 살아 있다. 이런 표현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논의는 불필요하다. 한글만이 우리의 언어가 아니다. 이런 표현도 글쓴이의 개성이다.

다만, 이것만은 알고 가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다.
(1) 그 사람은 양심적이다.
(2) 그 사람은 양심이 있다.
(1)과 (2)의 뜻은 완전히 다르다. (1)은 대체로 양심이 있는 것이고, (2)는 확실히 양심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적’은 ~한 경향이 있다는 뜻에 많이 쓴다.

(3) 고질적 병폐다.
(4) 고질의 병폐다.
(5) 고질 병폐다.
(6) 고치기 어려운 병폐다.
여기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3)과 (4, 5)의 뜻은 다르다. (3)은 고질의 성질이나 경향이 있는 것을 말한다. 편집자는 다시 한 번 저자의 뜻을 헤아린 뒤 글을 교정해야지 무조건 자기 스타일대로 고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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